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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나라의 대표 여성 문인이자 어마무시한 필력을 갖고 계시는 박경리 작가님의 작품을 다루고자 한다.
통영의 딸로도 불리시는 우리 박경리 작가님. 말이 뭐가 필요할까? 그냥 대단하신 분이다.
오늘은 박경리 선생님의 수 많은 소설 중에 김약국의 딸들에 나타난 여성 주체의 형상과 주제 의식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드라마로도 각색되어 방영되었을 때 큰 인기를 얻었던 작품으로 한 번 쯤은 들어 봤을 김약국의 딸들. 지금부터 논해 보고자 한다.
서론
1950년대의 여성은 그 역사적 시간의 특수한 상황으로 말미암아 여러 각도에서 고통을 받는다. 전쟁이라는 50년대의 역사적 시간과 과거로부터 유구히 이어져 내려 온 유교적 전통과 한국 풍토에서 전쟁 미망인인 여성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가족과의 사별, 여성이기에 당해야하는 사회적 불평등, 생계에의 위협 등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1950년대를 산 한 여성으로서 박경리는 당대의 시대적 현실에서 부단히 괴로워했다. 그의 절절한 체험은 필연적인 내적 요구로서 작품상에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고, 또 그의 작품 활동은 미망인으로서 한 가족의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먹고 살아야 했던 절박함과 개인적으로 불행했던 체험들은 작가로서 작품과의 서사적 거리를 온전히 확보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시기 작품들이 자전적이며 사소설적 경향으로 기울어지는 것은 작가의 정체성의 위기로 인해 주체로서의 자아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소설 작가란 평가에 대해 작가가 불쾌하게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의 작중 여성 인물들에게서 드러나는 것은 여전히 자전적 인물들이고, 따라서 작가와 작품의 거리가 밀착될 수밖에 없었다.
『표류도』는 전쟁에 남편을 잃고 어머니와 딸 한 명을 데리고 있는 미망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이 미망인은 생활의 궁핍함에 시달리면서 견고한 외적 현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부단한 싸움을 전개한다. 소외와 고독의 상태, 결벽증적인 자기 존엄성이 유지되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 끊임없는 내적 갈등이 이어진다. 또한 주인공의 내적 초점화를 통해 당대의 사회 현실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고 비극적으로 치닫는 사건을 통해 삶의 절박함을 경험하고도 삶의 대한 의지를 놓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본고는 주인공 현회를 중심으로 한 현실과 이상사이에 내적 갈등 양상, 비판적 사고, 비극적 사건을 극복하려는 삶의 의지의 모습을 분석하고자 한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내적 갈등
『김약국의 딸들』은 전체 여섯 장으로 구성된다. 이 중 작품 전체의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제 1장은 나머지 장의 서사를 복선적으로 예시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제 1장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장의 서사는 ‘용빈’을 비롯한 딸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구한말부터 일제 말기까지 걸쳐 있는 스토리 시간과 다양한 인물들의 등장에 비해 이 작품의 공간 설정은 비교적 단순하다. 소설은 개항 무렵의 통영 항을 ‘점묘’하는 서술자의 시선 아래 시작된다. 통영이 작품의 주된 공간으로 설정됨을 짐작케 하는 이러한 서두의 서술은, 이 고강이 김약국의 복잡하고 불운한 가계사가 얽히고 설킨, 압축적인 곳임을 예시한다. 무려 여섯 페이지에 달하는 소설 공간에 대한 점묘는 원경화에서 근경화의 기법으로 진행되면서, 인물들의 구체적인 삶으로 접근해 나간다.
이 작품에서 통영이라는 공간은 전근대와 근대가 병존하는 혼융지로서의 지리적, 시대적 상징성을 띤 곳으로 묘사된다. 통영이라는 이러한 상징성은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주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얼핏 강한 운명론적, 주술적 세계관에 속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작품의 분위기는 통영이라는 공간이 지닌 전 근대적 측면에서 유래한다. 서두의 서술에서는 통영은 ‘다른 산골 지방보다 봉건제도가 일찍 무너지고 활동의 자유, 배금사상이 보급된’ 곳으로 묘사된다. 통영이라는 공간이 지닌 지리적 특성에 기인하는 이러한 측면은 작중 용빈으로 대표되는 의지적 세계의 축을 형성한다. 그러니깐 구한말부터 일제 말기의 통영이라는 공간이 지닌 강한 상징성 자체에서 이미 이후의 서사가 대립되는 두 세계의 충돌과 갈등을 중심으로 진행될 것임을 예시하고 있는 셈이다.
대립항을 이루는 두 세계 가운데 보다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은 전근대적, 주술적, 운명론적 세계이다. 이러한 측면은 이 작품을 일종의 예형론적 서사로 오인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그 예형론의 뿌리는 김약국의 아버지 봉룡과 어머니 숙정 간의 불화와 그로 인해 빚어진 봉룡, 숙정, 욱의 죽음이다. 『김약국의 딸들』의 서사가 ‘성서적 예형론’의 원리에 의해 지배된다고 보는 한 논자는 “이 작품 내에서 벌어지는 외적인 사건들이란 별다른 의미가 없다. 그것은 이미 예견된 일의 재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 내에 남는 것은 작품인물들의 독특한 성격뿐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은 작품에서 종종 잠언의 형태로 등장하는, “비상 먹은 귀신은 지리지 않는다”라는 예언적 발화가 결국 작품 전체의 서사를 통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예언적 발화가 맞아 떨어지느냐를 따지고 결국 그것이 맞아 떨어진다고 보는 것인데, 과연 그러한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
작품에서 작가가 긍정하는 가치를 갖고 있는 인물이 누구인가의 문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논의들은 공통적으로, 작가가 긍정하는 인물이 용빈이 아님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작품에서 주된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인 용빈은 작가의 현실 극복 의지를 표상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점은 서술 기법적인 측면에서 드러나는데, 다른 인물들과는 다르게 용빈의 경우 초점화 서술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한 근거로 들 수 있다. 대부분의 서술에서 서술자는 인물들과의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용빈의 경우에 있어 서술자는 그녀와의 객관적인 거리 두기를 파기하고 그녀의 내면 의식을 초점화 하여 보여준다. 이는 이 작품의 서사가 다양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직조되는 것과는 다르게, 이 작품이 용빈이라는 인물의 내면 의식과 행동을 중심으로 의미화 되고 있음을 뒷받침하는 근거이다.
“아버지 같다.”
말보다 느낌은 늦게 왔다. 고고한 파초의 모습은 김약국의 모습 같았고, 굳은 등 밑에 움츠리고 들어간 풍뎅이는 김약국의 마음 같았다. 매끄럽고 은은하고 그리고 어두운 빛깔의 풍뎅이 표피(表皮), 한실댁은 그 마음 위에 앉았다 가 언제나 미끄러지고 마는 것이라 용빈은 생각하였다.
성수와 한실댁의 관계를 압축적으로 진단하고 있는 용빈의 의식을 보여준다. 그녀의 의식은, 그다지 금슬이 좋지 않은 성수와 한실댁의 관계를 ‘파초’, ‘풍뎅이’와 같은 자연물의 이미지를 통해 냉철하게 인식하고 있다. 한실댁에게 늘 냉담한 성수와, 성수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평생을 외롭게 살아온 한실댁의 모습은 ‘매끄럽고 은은’하지만 ‘어두운 풍뎅이 표피’에 앉았다가 ‘언제나 미끄러지고 마는’ 형상으로 묘사된다. 여기에는 다사롭지 못한 부모 사이를 바라보는 용빈의 안타까움이 담겨 있다. 그러나 용빈은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의 감정을 숨긴 채로 오직 자연물의 이미지를 빈 냉철하고 객관하된 시선만을 드러낼 뿐이다.
용빈은 천연스럽게 자기 자신을 가장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뒷문으로 들어섰을 때 그들의 방에는 불이 꺼져 있었 다. 방문을 열어보니 방안은 비어 있었다. 그는 툇마루로 나와 우두커니 하늘을 올려다본다. 세병관 앞에서 일, <미 스 케이트>의 방에서 주고 받던 대화, 오랜 세월이 흘러버린 먼 옛날의 일 같이만 생각되었다. 옛날에 보았던 활동 사진의 장면과 장면 같기도 했다. 조금 전에 대면하였던 그 영상(映像)들이 멀어지는 것과 반대로, 슬픔은 훨씬 더 절박하게 가슴에 오는 것이다. 필경은 모두가 다 남이었다는 이치가 그 영상들을 멀리하였으나, 남이었다는 그 인 식은 견딜 수 없는 고독으로 용빈을 몰아 넣은 것이다.
홍섭과 마리아의 관계가 불거지면서 야기된 용빈의 내면 갈등을 담고 있다. 특히 이 시점에서 김약국 집안에 몇 가지 흉사가 더해지면서 용빈의 고뇌와 갈등은 정점에 이른다. ‘필경은 모두가 다 남이었다는 이치’를 깨닫는 과정에서 용빈은 ‘견딜 수 없는 고독’을 느끼는데, 이 때 그녀가 느끼는 고독은 일차적으로 홍섭의 배신으로 인해 촉발된 감정이다. 그러나 그녀가 느끼는 고독의 보다 근원적인 이유는 용빈 자신의 고립된 위치에 있다. 그녀는 집안에서 유일하게 고등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며, 아버지 성수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딸이라는 점에서 다른 딸들과 변별적인 자질과 위치를 부여받는다. 용빈의 타고난 총명과 지성을 포함하여 그녀에게 부과된 변별적인 자질과 위치는 그녀로 하여금 자신을 고립된 존재로 인식하도록 유도하였으며, 여기서 그녀의 근원적인 고독이 발생한다.
용빈은 윤희를 일별하는 순간, 그리고 그 병적인 미소를 보는 순간, 정윤이라는 인간성과 대윤이라는 인간성에 어 떤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을 느꼈다. 두 형제가 다 같이 쓴 안경, 그리고 차가운 눈빛 속에 감추어진 어떤 인간에 대 한, 인생 자체에 대한 오뇌를 보는 듯하였다. 병적인 미소를 지닌 여자를 사랑하는 정윤이와, 지식의 수준이 얕은, 그리고 과부인 순자를 사랑한 태윤이. 그 비정상적인 연애 속에서 그들은 일종의 자학을 맛보고 있는 것이나 아닐 까? 맹목적인 사랑에 빠지기에는 너무나 그들 형제의 지성이 승(勝)했다.
정윤과 태윤에 대한 용빈의 평가가 제시되고 있다. ‘비정상적인’형태의 사랑을 하고 있는 이들 형제를 두고 용빈은 두 인물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데 이러한 인식 또한 그들 형제에 대한 시림적 거리두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병적인 미소’의 윤희와 친구의 부인이었던 ‘과부’ 순자를 사랑한 이들 형제에 대해 용빈은, 이들이 ‘자학’을 통해 삶을 견디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용빈의 내면에는 갑작스럽게 닥친 갖가지의 불행을 견뎌야 하는 자신의 현실과 처지에 대한 인식이 포함되어 있다.
종일 용빈은 누웠다 앉았다 하며 마음의 안정을 이루지 못하였다. 김약국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용빈에게 있어 용옥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는 괴로움에 다시 타격을 던졌다. 용옥은 생전에 자기 자신에 관한 말을 한 일이 없다. 그러나 용빈은 용옥이 행복하지 못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용옥이 결혼할 후 더욱 광신적으로 기독교에 기울 어지는 것으로도 능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메마른 얼굴, 빛을 잃은 눈동자, 용빈은 가엾은 동생을 위하여 남몰래 간혹 근심을 하기는 했으나, 여러 가지 격심한 사건의 연속 속에 용옥의 존재는 그다지 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였 다. 용빈은 그것을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아팠다. 그야말로 용빈의 마음은 억만 군졸이 짓밟고 지나간 형상이었다.
용옥의 죽음을 들은 용빈의 내면 묘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부분이다. 특히 이 대목에서 용빈은 용옥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처음으로 드러낸다. 용옥의 비극적인 삶과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는 용빈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평소 그녀에게 무심했던 자신의 태도이다. 용빈은 가족 중 거의 유일하게 용옥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감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실질적인 위로나 도움을 주지 못했으며, 이에 따라 용옥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실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이러한 자신의 무심한 태도를 후회하고 반성한다. 그런데 용빈의 이 같은 무심한 태도는 비단 용옥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일찌감치 통영을 떠나 자신의 본거지를 서울로 옮겼으며, 고등 교육과 기독교의 세례를 받아 매사를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부여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이러한 그녀의 변별적인 자질과 위치는 고립적으로 그녀로 하여금 가족들을 포함하여 모든 타인들에 거리를 두는 태도를 갖도록 이끌었으며, 이는 작중 그녀의 태도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녀의 냉철하고 이성적인 대토는 시종 서사의 한 축을 형성한다.
이러한 용빈의 내면 의식을 초점화한 서술들은 용빈이라는 인물의 내면 의식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다양한 등장인물들 가운데 특히 용빈의 내면 의식을 부각시키는 초점화 서술이 빈번하게 드러난다는 점은, 이 작품의 무게중심이 용빈이라는 인물에 집중되어 있음을 짐작케 한다.
귀향-탈향의 구조
『김약국의 딸들』의 서사를, 갈등하는 두 세계 간의 충돌로 파악할 경우 용빈은, 전근대적 세계의 주술적 위력에 대항하는 인간의 의지를 표상하는 인물로서의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이에 대한 근거로 작용하는 것이 작품의 전체적 구조 차원에서 발견된다. 바로 ‘귀향과 탈향’의 구조인데, 이러한 구조의 중심에 용빈이라는 여성 인물이 위치하고 있다는 점은 작품 해석의 의미심장한 근거이다.
용빈의 첫 번째 귀향은, 일본에서 오 년 만에 귀국한 옥화의 아들이 저지른 ‘끔찍한 살인사건’과 함께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때 용란과 한돌의 정사가 성수와 용빈에 의해 발각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용란은 용빈에게 극단적인 앙심을 품게 되고,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아편쟁이이자 성적 불구자인 연학과 강제로 혼인을 하게 된다. 용란을 중심으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용빈은 자신의 종교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한다.
그 여자의 더러운 습성이 깃든 모습 속에는 저는 더러운 것을 느낀 일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무나 아름답게 만들어주신 그 미모의 탓일까요? 악과 선은 언제나 명확하게 구별되어 있을 거에요. 그러나 그 자신이 악을 악으로 알지 못할 때, 그러나 우리는 그 여자를 뚜들겨 주는 거예요. 그리고 그 여자는 하나님 앞에서 간음을 범한 죄인이 되는 거에요. 그러나 그건 우리의 생각일 뿐이며 우리가 보는 사실일 뿐이에요. 그 여자는 몰라요. 자연 속에서 어 떤 생물이 자라나듯이 그 여자는 다만 존재해 있을 뿐입니다. [중략]
케이트 선생님 저의 신앙은 지금 걷잡을 수 없는 혼돈 속에 있습니다.
용빈은 유년 시절부터 기독교의 세례를 받은 인물로 설정된다. 그녀가 일찍이 영국인 힐러 선교사와 전도사 케이트로부터 사랑을 받았으며 그들의 권고로 서울의 미션 계통 여학교와 S여전으로 진학했다는 점, 그리고 자신의 고민이나 회의를 유일하게 케이트에게만 털어놓는다는 점, 용빈을 숭배하는 용옥이 그녀의 영향을 받아 독실한 기독교도가 되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점은 자명하다.
용빈의 의식이 용란의 사건을 계기로 점차 탈기독교화된다는 사실을 짐작케 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홍섭, 마리아와 관련된 일화들이다. 용빈을 배신한 홍섭이 작중에서 시종 ‘나이브한’, ‘냄새를 피우는’ 부정적인 기도교도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 홍섭이 용빈을 버리고 대신 선택한 마리아라는 여성 또한 부정적인 기독교도라는 점, 홍섭의 배신으로 절망에 빠진 용빈이 케이트를 찾아가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는 대목에서 종교에 대한 그녀의 회의와 불신이 극도로 효출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4장 이후의 서사에서 기독교와 관련된 일화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등이 이에 대한 근거가 될 만한 내용이다. 결말에서, 용빈이 집안을 정리하던 중 우연히 케이트가 준 성경책을 발견하고 이를 용란에게 남기는 설정은, 그녀가 기독교로 회귀함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과거와의 결별이라는 상징성을 띤 행위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종교에 대한 용빈의 갈등과 회의는 결국 인간 구원의 방법이라는 작품의 주제적 측면과 강하게 결부되어 있다. 용빈의 내면 갈등을 통해 제기되는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들은, 결국 인간 구원이 방법이 작중 기독교로 대표되는 종교적 차원에 놓여 있지 않고, 인간의 주체적 의지의 차원에 놓여 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용빈이 다시 서울로 돌아가고 용란이 연학과 혼인을 하면서, 용란으로 인한 분란은 일시적으로나마 진정 국면으로 접어든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귀향에서 용빈은 자신의 혼인 문제와 관련된 사소한 사건들을 겪는다. 이 시기는 상대적으로 김약국 집안에 분란이 많지 않은 때이다. 네 번째 귀향은 남해환이 실종된 사건과 용숙이 치정 사건, 용빈과 홍섭과의 불화 문제 등과 함께 이루어진다.
용숙, 용란으로 인한 집안의 분란 남해환의 실종과 전례 없는 흉어로 인한 경제적 타격, 그리고 홍섭의 배신으로 인해 용빈의 절망감은 극에 달한다.
여름마다 겨울마다 고향으로 내려오건만, 용빈은 이번 귀향에 있어서 가장 큰 괴로움을 받았다. 학생신분에서 오 는 구속감을 벗고 사회인으로서 한결 개방감을 느껴야 했을 것을, 그는 어느 때 보다도 무거운 마음으로 바다를 바 라보는 것이다. 남해환이 실종함으로써 경제적인 큰 타격을 받은 집안 사정이라든가, 아버지가 소실을 얻었다는 소 문, 여전히 보따리를 싸가지고 친정에 드나든다는 용란의 신세, 그리고 태윤이 왜경에게 붙들려 갔다가 놓여나온 사건 등, 우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용빈에게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보다 절실한 문제는 자기 자신에게 있었 다. 홍섭과의 일이다.
위에 글에서 용빈이 처한 객관적 상황이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용빈이 느끼는 ‘무거운 마음’에는 아들이 없는 김약국 집안에서 그녀가 차지하는 위치가 특히 부각되어 드러난다. 이 시점은 이미 가세가 기울대로 기운 김약국의 집안에서 용빈이 실질적인 가장의 역할을 넘겨받는 시기이다. 학업을 마치고 취직을 한 용빈의 상황과 김약국 집안의 몰락한 상황이 거의 동시적인 것으로 배치되면서 용빈의 집안의 가사를 책임지는 가장의 위치로 부각되는 것이다. 이후의 서사에서, 전통적인 인물 유형에 속하는 김약국, 한실댁, 용옥은 모두 죽음을 맞고, 그와 대조적으로 용빈이 용혜를 데리고 통영을 떠나는 ‘탈향’의 결말 구조가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전통적인 인물 유형의 몰락이나 죽음, 그리고 근대적인 인물의 탈향이라는 대비적 화소의 배치는 용빈으로 대표되는 주체의 의지를 강조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김약국’으로 표상되는 주술적 세계인 과거와 결별하고, 주어진 가혹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주체로 서는 계기로 작용한다.
용빈의 마지막 귀향은 성수의 죽음을 계기로 이루어진다. 한실댁의 죽음과 용란의 발광, 용옥의 죽음은 분명한 인과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반면 성수의 죽음은 작중의 사건들과 강한 인과관계로 얽혀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는 철저하게 주술적 가치에 묶인 자신의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지 때문에, 그의 죽음은 예언적 발화의 연장선상에 놓인다.
새까맣게 탄 얼굴로 김약국은 임종을 앞두고 있었다. 맑은 눈이다. 의식도 분명한 듯하였다. 그의 눈은 흐느끼고 있는 용혜로 향하고 있다. 노오란 머리칼이 물결친다. 김약국은 오래오래 용혜를 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천천히 이 동한다. 시원하게 트인 이마만이 보이는 고개 숙인 용빈으로 옮겨간 것이다. 용빈은 김약국의 시선을 느끼자 얼굴 을 들었다. 오열과 같은 심한 떨림이 그 눈 속에서 타고 있었다.
봉제 영감의 뒤를 이어 2대 김약국이 된 성수의 의식 세계를 지배하는 요인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비상을 먹고 자결한 어머니 숙정과 객사한 폭군인 아버지 봉룡으로 대표되는 불운한 가계사이며, 다른 하나는 사촌 누이 연순과의 못 다 이룬 사랑이다. 임종의 순간 성수의 눈길이 ‘노오란 머리칼’의 용혜에게 오래 머무는 장면은 그의 내면 의식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내면을 시종 지배해왔던 것은, ‘노오란 머리칼’로 상징되는 것이며, 이는 아버지 봉룡과 사촌 누이 연순으로 연결된다. 포악한 성정의 봉룡은 김약국 집안의 비극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인물이며, 누이 연순은 어린 김약국에게 연정의 대상이었던 인물이다. 봉룡과 연순은 어린 성수에게, 용납될 수 없는 애정 곧 결핍의 대상들이었다. 이러한 결핍감은 이후 성수의 의식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게 되는데, 한실댁과의 결혼 생활이라든가 기생 소청이와의 관계 등에서 드러나는 그의 냉담한 태도는 유년기의 결핍이 미친 영향이며 그로 인해 그의 의식이 전혀 성장하지 못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성수가, 가문의 비극적인 역사가 고스란히 간직된 폐가를 중건하여 그곳에 자신의 터전을 새롭게 구축했던 것은, 그의 의식이 폐가로 상징되는 자신의 과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증명한다.
성수의 임종을 마지막으로 용빈은 고향인 통영을 떠난다. 통영으로 상징되는 자신의 근거지를 벗어나는 결말의 탈향은, 그것이 성수의 죽음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의 결별이라는 의미를 부여받는다. 용빈의 마지막 귀향은 결국 탈향을 위한 것이며, 비극적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굴절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용빈에게 과거와의 결별은 성수의 죽음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된다. 성수의 죽음이 ‘김약국’으로 대표되는 한 세대의 소멸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면, 용빈의 탈향은 한 세대의 소멸을 딛고 일어서는 새로운 세대의 시작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그 새로운 세대의 중심에 용빈이라는 여성주체가 자리한다. 이 때의 주체는 ‘비상 먹은 자손은 지리지 않는다’는 운명론과, 피로 얼룩진 불운한 과거로부터 결별하고, 인간 의지의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주체이다. 전후의 척박한 상황을 타개하고 극복하기 위해 작가는 용빈이라는 새로운 여성주체의 유형을 선보였다.
결론
『김약국의 딸들』의 배경은 구한말에서 일제 말기에 이르는 시기이며 그런 만큼 이 작품의 표층에서 전후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문제 삼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전후의 척박한 상황을 타개하고 극복하기 위한 작가의식의 소산이라는 결론은, 용빈이라는 인물과 그 인물이 직면한 현실 상황을 메타포로 해석할 수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주체적 측면이며, 그것이 어떻게 표출되고 요구된 주체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떠한 형상으로 드러나는가의 문제는 중요하다. 용빈은 전후의 현실 상황을 타개하고 극복해 나가려는 주체로서의 면모가 들어나는 인물이다. 특히 용빈의 내면을 초점화하여 보여 줌으로써 작가는, 전후의 척박한 상황을 경험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주체와 그의 시선을 부각시킨다.
『김약국의 딸들』은 용빈이라는 여성 인물의 내면을 초점화함으로써 서사의 진행에 따라 변화하고 갈등하는 그녀의 의식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이 작품의 서사가 한 인물이 아닌 다양한 인물들의 중심으로 직조되는 것과는 다르게, 이 작품이 용빈이라는 인물의 내면 의식과 행동을 중심으로 의미화되고 있음을 뒷받침하는 근거이다. 또한 『김약국의 딸들』의 서사를, 갈등하는 두 세대 간의 충돌로 파악할 경우 용빈은 전근대적인 세계의 주술적 위력에 대항하는 인간의 의지를 표상하는 인물로서의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이에 대한 근거로 적용하는 것이 귀향-탈향 구조인데, 이러한 구조의 중심에 용빈이라는 여성 인물이 위치하고 있다.
용빈은 강한 운명론의 지배 하에 놓인 서사의 한 축과 대립하는 의지의 주체이다. 그녀의 예형론적 발화에 운명론과 불운한 과거로부터의 결별을 선언하고, 인간 의지의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주체이다. 용빈이 처한 결말의 상황은 몰락과 폐허에 다름 아니며, 이는 전후의 황페화된 현실과 동질적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현실을 체험한 인물이 어떻게 상처와 갈등을 극복해 나가는가의 문제에 일관되게 천착하고 있다. 따라서 박경리 문학의 주된 관심은 인간 삶의 배경인 역사와 사회현실 또는 양자의 상호관련 양상이 아니라 그것들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인간의 본성 또는 인간 삶의 배경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인간 존재의 초월적 일반성이 아닌, 당대를 몸소 체험한 인물의 자기 연민과, 그로 인한 상처와 갈등을 극복하는 인물의 주체적 면모를 드러내는 데 집중하였다. 결말에서 용빈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강하게 지배하고 있던 운명론적 세계관에서 벗어나는 계기로써 탈향을 선택하여 운명론에 대항하는 의지적 주체로서의 면모를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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