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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넘이 마을의 개」 (1984. 황순원)

 

오늘은 작가 황순원이 1948년 3월 개벽에 발표한 목넘이 마을의 개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우선 우리 황순원 작가님, 

시인이자 소설가이신 우리 작가님. 아드님이 즐거운 편지로 유명한 황동규 시인이시다. 

작가 황순원

 

목넘이 마을의 개

 

1. 작품 선택의 이유

 

황순원의 『목넘이 마을의 개』(1948.12)는 『늪』, 『기러기』에 이은 그의 세 번째 작품집으로 해방 직후부터 전쟁 전까지 쓴 일곱 편의 단편소설들을 모은 것이다. 이 작품집은 당대 사회현실을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반영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순수와 서정의 세계로 평가되는 이전의 두 작품집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생의 외경⌟이라 불리는 철학을 지녔던 슈바이처가 제 2차 세계 대전 때 6백만의 유태인을 학살한 히틀러의 잔학성에 대해 한마디의 언급도 없었음은 어찌된 일일까. 그건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슈바이처 같은 사람이 함구했다고 해서 우리도 잔학성에 대해 침묵할 까닭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위에 글은 황순원 작가의 고희를 맞아 황순원의 문학과 작가적 생애를 기르기 위해 동료·후배 작가들과 제자들이 참여하여 만든 책으로 황순원 본인이 문학적 생애를 돌이켜보며 여러 마음들을 단상으로 그러낸 에세이 ⌜말과 삶과 自由⌟의 일부이다. 일부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을 현실인식이 결여 되어있다. 사회의식이 전반적으로 없다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의 대한 비평의 글들은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잘 못 되었음을 지적 받았고 위에 에세이에서도 볼 수 있듯이 황순원 본인도 현실 사회의 비판됨을 함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현재까지의 황순원 문학에 대한 연구는 대체로 순수성과 낭만성을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많이 이루어져왔기 때문에 그의 작품세계 중 ‘가혹한 현실에 대한 구체적 발언행위이거나 아니면 시대상황의 사실적 드러냄’이라고 할 수 있는 해방기에 쓰여진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간과되어 온 경향이 있다. 또한 해방 후의 소설에 대해 어떠한 작품도 갖지 못한 폭넓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목넘이 마을의 개』에 일곱 편의 단편 소설들 중에서도 해방 후 사회적으로 가장 문제가 되었던 토지 소유의 재분배에 대한 사회 인식과 비판을 나타낸 「집」과 「황소들」의 분석을 통해서 작가의 현실의식과 비판의식을 보고자 한다.

『목넘이 마을의 개』는 해방 후 1948년 12월 7일 육문사를 통해 발표한 단편집으로 전란을 겪으며 초판본이 많이 유실되어 그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따라서 1981년에 5월 1일 출간된 『황순원전집 2』를 통하여 작품을 연구하고자 한다.

 

 

2 토지분배와 농민의 문제

 

‘한국은 전통적으로 농경사회이기 때문에 주거공간으로서의 집과 생산터전으로서의 토지의 문제가 개인의 삶은 물론이고 사회전체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건이 되었다. 그러므로 일반사람들의 기본적인 욕망도 이 두 조건을 전제로 하여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그의 작품 속에 구체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황순원은 지주와 소작인의 관계, 공출문제에 그 초점을 두고 있다. 작가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집」과 「황소들」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는데 농민에게 있어 해방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한 이들에게 있어 가장 절실한 문제는 무엇인가 라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토지분배의 불평등과 생존조차도 해결되지 못하는 농민들의 생활상을 그려낸다.

「집」은 해방을 맞이하여 소작인에게 벗어나 자작농이 되려는 꿈을 갖고 살아가는 막동이네와 새로운 지주가 되려는 야심을 가진 전필수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주가 되고 있다. 농민들에게 해방은 일제의 강점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보다 현실적인 의미로 더 이상 공출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8.15가 왔다. 그리고 8.15가 왔다는 것은 다른 농민에게서처럼 막동이네에게 있어서도 공출이 없어진다는데 뜻이 있었다. 마치 여지껏 헐벗고 굶주리게 하던 것이 공출 그것뿐이었다는 듯이.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8.15 이후에도 소작농민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은 조금도 해결되지 않았고 공출제도도 여전히 남아있어 농민들은 굶주림에 허덕여야만 했다. 농민이 토지를 소유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문제는 해방 이후에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막동이네 집안형편에서 잘 드러난다. 이는 물론 표면적으로는 막동이 아버지의 투전바람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나지만 그 이면을 추적해 보면, 교묘한 방법으로 집을 차지해 버리는 새로운 지주 전필수와, 개간한 땅에도 공출이 나오는 불합리한 공출제도의 지속이 막동이네 집의 몰락을 초래하는 진정한 원인임을 알게 된다. 막동이네는 해방 전에는 지주 민창호와 일제의 수탈에 의해 소작농으로 몰락하고 해방 후에는 다시 전필수에게 집터마저 빼앗겨 버리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를 통하여 식민지 시대와 해방 직후의 농민 상황이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는 작가의 인식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집」에서 직접적으로 현실의 부정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이러한 현실을 암시하는 삽화들을 배치하고 있을 뿐이다. 막동이 할아버지가 손녀와 물놀이를 하면서 느끼는 행복감을 드러내는 장면, 그가 농토에 쏟는 지극한 정성을 보여주는 장면, 그리고 열병에 걸려 정신을 못 차리던 막동이가 세간나가는 벌들을 사력을 다해 몰아오는 장면들이 수시로 삽입되면서, 건실하고 순박한 농민이 몰락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예리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부정적 현실 속에서 막동이네는 더 이상 버텨나갈 힘을 잃게 되고, 결국 집은 전필수에게 넘어가 버리고 막동이 아버지는 그 집에 깔려 죽고 만다.

 

 

이튿날 아침 막동이 아버지는 자기네 낡은 집밑에 시체가 되어 발견됐다. 기울어졌던 쪽 기둥을 안고 있는 것이 그 기둥을 밀어 집을 넘어뜨리면서 깔린 것 같았다. 동네사람들은 막동이 아버지가 죽으려고 그런 짓을 했는지, 취한 김에 낡은 집을 허물어 버린다고 하다가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해서 그렇게 됐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집이 무너지면서 전필수네 뒷담장 일부분을 헐어놓았다. 그리고 어젯저녁 소낙비가 내리붓고 뒤이어 어두웠기 때문에 막동이 할아버지가 밖에서 벌들이 채 못 들어왔을 걸 염려하여 다음날 저녁 때 옮겨가려고 그냥 두었던 벌통들을 묻어버렸다 거기에서 벌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마치 막동이 아버지의 몸에서인 듯.

 

 

이렇게 작가는 「집」에서 소극적이고 패배적인 농민상을 그려내었지만 「황소들」에서는 이와는 달리 자신들이 처한 왜곡된 현실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지주에게 항거하여 승리를 얻어내는 강인한 농민들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다.

 

「황소들」은 지주의 횡포에 대항하여 농민들이 벌이는 집단운동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의 핵심에는 전해 내려오는 ‘황소와 호랑이의 싸움이야기’가 있으며 인간을 동물에 특성에 적절하게 비유하여 인물들을 성공적으로 조형하고 있다. 이 소설은 열세 살 소년인 바우의 눈을 통하여 펼쳐지고 있어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세세하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의 눈은 시종 공출문제와 소작농민들의 절박한 현실을 보여주는데 맞추어져 있으므로 당시 농민들의 실상을 드러내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그런데 오늘 아버지의 심상치 않은 얼굴엔 어쩐지 오늘 안으로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꼭 일어날 것 같은 기미가 보인다. 바우는 엊그제 어디선가 공출관계로 많은 농사꾼이 불려갔다는 소문이 났을 때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거린다던 아버지의 말이 떠오른다. 바우는 그러니깐 오늘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것도 그게 어떠한 것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황소들」은 위에서 살펴본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농민들이 처한 현실을 공출문제를 통해 접근하고 있다. 이 작품의 곳곳에는 공출제도의 실상과 이에 대한 빈농들의 저항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런데, 아. 큰일이다 바우의 눈앞에는 그 무서운 총대 앞에 아버지와 동네 사람들이 나가 쓰러지는 모양이 떠오르는 게 아닌가 그러는 아버지와 동네사람들의 눈에 빛나는게 있었다. 눈물이었다. 그리고는 모두 꿈틀거린다. 마치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듯이. 그리고 모두 울부짖는다. 이대루가 단 아무래두 다 굶어죽을 목숨여 누가 공출을 안하겠다는 건 아니여 공평하게 해달라는 거지. 어떤 사람은 광속에 쌀가마니를 가득 들이쌓아놓구 몰래 일봉이나 다른 데루 팔아먹게 왜 내버려두느냐 말여, 밤낮 없는 사람만 들볶아댔자 뭐가 나올거여 아무래두 이대로 가다간 다 죽을 목숨여. 이 울부짖음은 모두 동네사람들이 벌써부터 하던 말들이다.

 

 

순하디 순한 농민들이 어떻게 성난 황소들처럼 떨쳐 일어나 서로 힘을 모으고, 지주에 대항해 가는지를 암시해 주는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바우가 어른들에게 들었다는 ‘황소와 호랑이의 싸움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옛날 어떤 아이가 소를 먹이러 갔었는데 호랑이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고 소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아이를 배 아래 넣고 호랑이를 몇 번이고 뿔로 받아 배를 터쳐 죽였다는 것이다. 평소엔 순해만 보이는 소도 위험에 처하면 호랑이를 상대로 싸워 이긴다는 이야기는 바로 지주를 상대로 싸우는 소작인들의 모습에 대한 암시를 하고 있다. 지주의 집을 습격하는 빈농들의 모습은 호랑이에게 달려드는 성난 황소의 이미지로 묘사되고 결국 이야기의 내용처럼 농민들은 현실적 폭력에 맞서는 싸움에 나서고 그들의 저항은 성공을 거두게 되는 것이다. 이들 농민들은 모두 그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들의 손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체가 일어서게 되는 것이다. 염무웅은 황순원의 「황소들」히 해방이 되었어도 모순을 딛고 일어서서 새로운 삶의 질서를 창조하려는 건강한 농민상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작가 황순원은 이 작품을 통하여 정치권력과 지주에 의한 농민수탈이 해방 후에도 그대로 지속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농민의 생계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에까지 이르고 있었음을 성실하게 증언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의 극복을 위해 분연히 일어선 한 떼의 농민들을, 황소처럼 건강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3. 『목넘이 마을의 개』의 의의

 

황순원의 『목넘이 마을의 개』에 수록된 일곱 편의 작품들은 모두 해방 직후의 사회상을 민감하게 반영하고 있다. 특히 「집」에서는 공출이 없어지리라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황소들」에서는 미군정하에서의 공출로 인해 농민들이 여전히 가난하며 수탈 당 할 수밖에 없는 현실상황이 그려지고 있다. 해방 당시 이러한 사회 문제들을 언급한 『목넘이 마을의 개』는 그의 작품들이 사회 비판 의식이 결여 되었다는 비판을 종식시키고 ‘당시의 생경한 문학논쟁을 극복하고 작품으로 반응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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