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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론
2004년을 즈음해서 다문화 사회에 관한 논의들이 가히 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공론장에 범람하고 있다. 다문화사회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또 다문화사회의 철학, 이론, 방법론으로서의 다문화주의란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분명한 것은 다문화 담론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이들이 존중되고 포용되는 방식으로 우리 사회가 다원주의적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는 징후를 발견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현실은 오히려 그 역에 가깝다.
정부는 이주민 정책을 다문화주의에 입각해 전환한다고 선언했지만 이주민들의 정주화를 방지하기 위한 단기 로테이션 정책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가족 동반은 불허되고 있으며, 반인권적인 단속과 추방은 강화 되고 있다.
2004년부터 정부는 산업 연수생을 근로자로 편법 활용하거나 불법 체류자를 고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고용허가제’를 도입하였다. 하지만 정부는 외국인근로자의 장기 체류가 내국인 고용기회를 보장하는 데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하여 단순기능 외국 인력의 체류기간을 3년으로 제한하고 기존이 있었던 외국인 불법 체류자를 모두 본국에 송환하기로 하는 법을 발의하게 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2003년 11월 11일, 한 청년이 달려오는 전철을 향해 부나비처럼 뛰어드는 장면이 텔레비전 9시 뉴스에 그대로 방영됐다. 텍스트 안에서도 등장하는 스리랑카 사람 다르카였다. 코리안 드림을 쫒아 한국에 왔지만 실상을 참담하기 뿐 사람대우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불법 체류자에 대한 대대적 단속이 시작하자 철로에 몸을 던진 것이다. 이와 같은 현실을 경험하고 작가 박범신은 『나마스테』를 집필하기 시작하였다고 작가후기에 서술하고 있다.
작가는 텍스트 안에서 희망을 품고 빚을 내면서까지 한국행을 결심하는 많은 외국인 노동자의 삶을 가감 없이 투영하고 있다. 그들의 삶은 ‘노예의 삶’이었고 ‘인간답지 못한 삶’이었다. 그들은 잘 못이 없는 ‘피해자’이고 그들을 억압하는 공장 직원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은 ‘가해자’인 것이다. 본고는 텍스트 안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 박범신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배타적 사회 비판’의 담론을 연구하고자 한다.
II. ‘배타적 사회’ 한국
“세, 세상이 화안……해요.”(9쪽)라고 시작되는 카밀의 말처럼 카밀은 ‘순수’함의 표상이었다. 텍스트 안에서 카밀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어휘들을 살펴보면 그의 ‘순수’함을 잘 알 수 있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간밤의 내 꿈에 난데없이 나타났던 장대한 설산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는 신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뒷모습은 환하고, 동시에 피어린 산인의 이미지였다. (16쪽)
카밀이 흰 이를 드러내고 말했다.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시선만 마주치면 환하게 앞니를 있는 대로 다 드러내곤 했는데, 웃을 때 소리를 내는 법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의 웃음은 밝으면서 고요했다. (29쪽)
나이 서른에, 이미 내가 다 상실하고 만 것들을 카밀은 너무도 많이 갖고 있었다. 그는 사랑을 믿었고 세상을 받 아들였으며 그가 품고 있는 신들에게 언제나 경배했다. 세상이 화안해요……라고, 혼절할 만큼 지쳐 쓰러져 있던 그가 산벚꽃 그늘에서 내게 건넨 첫마디 말이 그를 볼 때마다 자주 내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의 본성이 환하니깐 그가 보는 세상이 환할 터였다. (44쪽)
흰색은 많은 문화에서 성스러움과 성역을 상징한다. 또한 서양에서 신부는 순수와 순결의 상징으로서 흰색 예복을 입는다. 작가는 이러한 흰색의 상징적 기호를 사용하여 카밀의 순수함을 더욱 더 부각시켰다. 하지만 카밀의 순수했던 모습은 우리 사회가 그에게 행하는 많은 핍박으로 인하여 소멸하고 만다.
카밀은 본래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다. 사랑을 찾아 한국을 찾은 외국인일 뿐이었다. 그의 고향은 네팔의 마르파이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이동 한 카트만두에서 첫 사랑이라 할 수 있는 사비나를 만나게 된다. 사비나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하여 여러 사람들의 기원 안에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향한다. 하지만 사비나의 한국 생활은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과 같이 그녀가 꿈꾸던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공장장은 그녀의 여권을 빼앗으며 공장에서의 이탈을 방지하고 월급 또한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적금을 들어 준다하며 빼앗았다. 또한 성적 노리개로 전락하기도 한다. 이로 인하여 카밀과의 연락이 끊기게 되고 카밀은 사랑하는 사비나를 찾기 위해 한국행을 결심하는 것이다. 카밀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잃어버리며 어쩔 수 없는 불법 채류자 신세가 되고 만다. 그 동안 카밀은 사비나와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이 겪은 것처럼 많은 고초를 겪게 된다. 이 때 카밀과 사바나,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발화를 통해 우리 사회가 당면한 많은 문제점들이 현실감 있게 들어난다.
[1] (중략) 노예면 어떻고 종처럼 부리면 어때요? 한국 사람들한테 뺨 맞고 욕 좀 먹으면 어때요? 그래서 다들 미 쳐 가지고 돈을 긁어모아 몇천 불씩 바치고 한국에 오는 거라구요. 부모도 나가서 돈을 빌리고, 온 친척들이 돈을 내놓고, 3000불이면 카트만두에서 엄청난 돈이지만요, 3000불씩 4000불씩 브로커에게 바치고 비자 받아내요.
(중략)
불법체류가 아니라도 해도 월급 제대로 받으려면 회사 사장님, 잘 만나야 해요. 아니 잘 만난다고 해도 실제 받는 월급 많지 않아요. 점심밥 준다고 계약서에 있지만요, 들어와보면 점심밥 공짜로 안줘요. 밥값 데고, 연수생 관리회 사에서 관리비 뗴어가고, 이리저리하다 보면 고작 몇 백 불 받는 게 보통인데요. 그것만 해도 운이 좋아야 하지요. 또 도망가지 못하게 여권 빼앗아놓고 안 주는 회사도 많고, 월급에서 강제적금 들게 한 뒤 떼어먹는 회사도 많고, 하루 몇 시간 일한다 계약은 하지만 돈 안 주고 잔업시키는 회사 많아요. 내 친구 하나는 의정부 어느 가구 공장에 서 일했는데 잠도 안자고 마흔 시간이나 일하다가 쓰러졌지만 사장님 병원비도 안줘요. 산재보험에 가입 안돼서 프 레스기에 손목 끊어지고 치료비도 못 받아 고생하던 사람도 봤어요.(82쪽)
[2] 왜는 짜샤, 우리가 주인이잖아!
한국인 직원 중 한 명이 소리쳤다.
(중략)
우리는 직원, 너희는 노동자.
우리는 주인, 너희는 노비였다. (84쪽)
우리는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말을 듣고 자라왔다. 그러나 불과 몇 년 만에 ‘한국 속에 또 하나의 세계’가 들어와 있다.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1990년에 5만 명에 그쳤다. 하지만 2010년 6월 기준 180개국에 121만 명. 전체 인구 4천 9백만 중 2.5%를 차지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1]과 [2]의 인용과 같은 현실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텍스트 안에서 카밀과 사비나를 비롯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위에 인용과 같은 부당한 현실의 세계를 끊임없이 고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부당한 처우를 방치하고 있는 정부와 외국인 노동자를 자신과 이질적인 피부를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새끼’, ‘졸라’, ‘네팔놈’이라는 비속어를 일삼고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고 무시하고 멸시하는 우리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게 그들의 발화를 빌려 비판적 담론을 형성하고 있다.
우리는 과거 일제 강점기를 겪으며 일제의 탄압을 피해 간도와 만주로 이동하는 수난을 당했다. 또한 강제 이주로 인해 러시아의 고려인 마을이 생기기도 했으며 일제의 강제연행으로 제일교포가 형성되기도 했다. 돈을 벌로 간 맥시코 애니깽 농장에서 노예와 같은 삶도 살아봤다. 독일로 간 광부와 간호사는 사회적 멸시를 받으면서도 우리의 가족들을 위해 굳건히 버텼으며 미국으로 이민 간 많은 한인들이 모여 거주했던 LA에 흑인 폭동이 일어날 당시 많은 물질적 피해와 한인들이 폭력적 상황에 놓였었다.
신우 또한 마찬가지로 LA 흑인 폭동으로 인해 아버지와 막내 오빠의 죽음을 경험한다. 이는 사회적 인종 차별로 인해 벌어진 폭동이었으며 카밀과 그의 친구들이 겪고 있는 상황과 비슷하다. 신우가 이러한 사건을 겪음을 배치함으로써 작가는 우리 사회에 일어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그때, 우리에게 총을 쏜 거, 우리가 진실로 용서하지 않아야 할 거, 중남미계나 흑인은 아니라고 봐. 따져보면 그 들도 같은 피해자라고 오빠도 말한 적 있잖아!”
“무슨 개소리를 하고 있어. 얘가.”
“우리나라에 와 있는 네팔 사람들, 외국인 노동자들, 엘에이에 있을 때의 우리 신세와 같잖아. 상처는 오빠와 내가 같지만, 그걸 대하는 관점은 오빠와 내가 너무 다른 것 같아 하는 말이야. 좀더 넓은 각도로 생각해봐.”
“시끄러워!”
오빠가 꽥 하고 소리쳤다.
“그때 얘기 할 것도 없다. 엘에이가 여기서 왜 나오냐. 세상에, 남자가 없어서 하필 네팔 놈이야” (125쪽)
신우와 신우의 오빠는 같은 상처를 갖고 있다. 하지만 신우는 LA에서 겪은 일들을 통해 인간에 대한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신우의 오빠의 눈에 카밀은 그냥 ‘네팔놈’일 뿐이다. 이와 같은 대비의 극명함을 통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배타적인 습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카밀이 바라본 한국인들은 ‘개 미워 낙지 사’는(121쪽) 한국인들인 것이고 그들의 표상은 신우 오빠라고도 할 수 있다.
“세상이 캄캄해요…….”
(중략)
나는 아마도 그때까지 마음 깊은 곳에서, 상처받은 짐승처럼 쓰러져 누워 있을 때조차, 세상이 환해요……라고 말 하던 그의 밝은 본질을 굳게 믿고 있었던가 보았다. 그러나 나와 마주보는 그 순간 카밀의 눈 속은 그야말로 캄캄 했다. (308쪽)
텍스트의 처음 카밀은 세상이 환하다고 했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의 자진 출국 기간이 끝날 때 즈음 스리랑카 사람 다르카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계기로 코리안 드림을 실현하기 위해 한국으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폭압적인 인간사냥’을 규탄하기 위해 일터가 아닌 광화문 부근 성당에서 데모를 하게 된다.이 때 카밀의 세상은 환한 세상이 아닌 캄캄한 세상이며 검은 눈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색깔이나 빛이 전혀 없는 검정색은 간혹 중립적인 상태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악과 은밀함을 상징한다. 또한 슬픔, 불운, 죽음과의 연관성으로 인해 지하 세계를 나타낸다. 카밀의 세계가 그렇게 변한 것이다.
카밀의 세계가 캄캄하게 변하듯 함께 데모를 하던 이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만 간다. 결국 현실의 벽을 뛰어넘지 못한 채 그들은 자진 해단식을 한다. 새로운 법 실행을 통한 한국 정부의 강경책에 그들은 타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농성이 완전히 해체된 후 카밀은 해단식마저 불참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뒤 카밀은 어느 날 고층호텔의 옥상 외벽에다가 ‘더 이상 죽이지 마라’는 현수막을 내려뜨린 채 몸에 불을 붙이고 투신하고 만다.
“나도 뭐…… 알아볼 만큼 알아봤어. 자네가 좋다는 게 아냐. 내 누이의 일이라 알아본 거지. 일단 신우랑 애린이 랑 함께 네팔로 가서 그쪽에도 혼인신고를 해. 그럼 방문비자를 다시 받을 수 있대. 그런 다음 일가족이 다시 나오 는 거야. 귀화신청을 하는 건 걱정 마. 2년만 기다리면 된다는데, 뭐 일하다 보면 2년 금방 가. 우리 공장에 자네 자리를 마련해둘거야.”
(중략)
“혼자…… 혼자 빠져나갈 수 없어요. 지금 와서…… 동, 동지들을 놔두고…… 어떻게…….” (311쪽)
카밀에게는 신우와의 자식 애린이 있다. 따라서 한국인과의 결혼을 통해 귀화 신청을 해 더 이상 쫒기지 않고 한국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된다. 하지만 카밀은 이를 거부하고 투신하고 만다. 이는 최인훈의 『광장』에 이명준과 같은 상황이다. 이명준이 좌 · 우 이데올로기 현실 속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던 자유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아 자유롭고 가족이 있는 푸른 바다로 투신한 것이 아니라 이동하였듯이 카밀 또한 폭력적이고 배타적인 사회 현실 속에서 자살하는 것은 투신이 아니라 카밀이 원하던 카일라스의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제 2, 제 3의 카밀이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나오지 않게 담론을 통해 경고의 메시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텍스트의 끝 무렵 ‘애린’이는 성장하여 아버지의 고향 네팔의 마르파로 향한다. 네팔 언어로 ‘마야’, 우리말로 ‘애린’은 ‘사랑’을 뜻하는 단어이다. 카밀과 신우의 딸인 애린에게 이같은 이름을 붙여준 이유는 우리 사회가 배타적 이기심을 버리고 외국인 노동자를 비롯하여 다문화 사회를 인정한다면 그 끝은 ‘사랑’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담론을 형상화하고 있다.
III. 결론
작가 박범신은 서론에서도 이야기 한 바와 같이 2004년 무렵 새롭게 시행될 ‘외국인 노동자’법으로 인하여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살하는 현실에 대한 성찰로 『나마스테』를 집필하였다. 네팔 출신 카밀과 사비나 그리고 작중 많은 노동자들의 발화를 통해 우리는 그들이 처한 우리사회의 그늘을 가감 없이 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나마스테』는 배타적인 사회 비판 담론을 담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카밀과 신우의 아이인 ‘사랑’을 뜻하는 ‘마야’, 즉 ‘애린’이를 남김으로써 우리사회가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이해한다면 ‘사랑’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참고문헌
-1차 자료
· 박범신, 『나마스테』, 한겨레신문사, 2005년.
-2차 자료
· 김은이 · 양옥경 · 이해영, 『다문화사회, 한국』 나남, 2009년.
· 미란다 브루스 미트포트, 『기호와 상징-그 기원과 의미를 찾아서』, 21세기북스, 2010년.
· 오경석 외, 『한국에서의 다문화주의』, 한울, 2007년.
· 이성미, 『다문화 코드-코리언 드림 해법 찾기』, 생각의 나무, 2010년.
· 홍원경, 『나마스테』에 나타난 외국인 노동자의 재현 양상, 중앙대 문화콘텐츠기술연구원, 다문화콘텐츠연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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