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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_광장

최인훈의 『광장』에서 ‘광장’의 의미 연구

 

 

I. 서론
II. 이명준의 유토피아 ‘광장’ 그리고 ‘바다’
1. ‘광장’의 출현 형태와 분포
2. ‘광장’의 상징적 의미
3. ‘바다’와 ‘갈매기’의 의미
III. 결론
* 참고문헌

 

 

 

I. 서론

1960년 『새벽』지 11월호에 『광장』이 발표되었을 당시부터 이 작품을 보는 시각은 일치하지 않았다. 백철은 이 작품이 특별히 남북통일론을 의식하고 쓴 것은 아니지만 그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커다란 암시와 실험의 사실을 제시해 주었음을 지적하고, <침체한 문학계에 하나의 돌은 던진 작품>으로 남북을 동시에 비판하고 공격한 그 리얼리즘 성격을 높이 평가한 반면, 신동한은 제3국을 택한 주인공은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광막한 바다에서 죽음을 택한 비열한 패배의식의 소유자>일 뿐 이 작품에는 문제성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현격한 견해 차이는 이후에도 계속된다. 가령 이명준이 정치와 경제, 문화 등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는 장면에 대해 <유아적인 불평불만의 수준> 혹은 <말장난>이라고 혹평하기도 하고, 관념성이 지나치다는 것을 비판하기도 하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비교적 성숙한 의식의 소유자인 이명준의 끝없는 사유와 자기문답은 지식인 소설로서의 입지를 마련하는데 기여했다고 보기도 한다.

창작기법을 보는 눈도 서로 다르다. 전통적인 소설 기법에서 벗어나 관념적이며 논리적인 수법 그 한 가지만으로도 훌륭히 소설을 창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최인훈은 한국소설문학에 폭과 깊이를 더한 작가라는 견해와 관념성에 의존하는 수법 자체가 비소설적이라는 견해는 어디에도 일치점이 없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수차례에 걸친 개작의 문제점까지 지적되고 있어서 작품에 대한 평가는 혼란스런 느낌마저 주고 있다.

생각건대 관념적인 표현에 대해 그 참신성을 인정할 것이냐, 전통적인 서사법을 존중하여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냐, 다시 말해서 관념의 표현을 유아적인 수준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성숙한 의식의 소유자가 펼치는 사유로 볼 것이냐는, 견해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작품의 본질적인 성격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느냐에 달려있다.

이러한 상반된 견해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최인훈의 『광장』이 문제작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하여 김현은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최인훈은 월남 작가들의 기본 도식을 이루고 있는 뿌리 뽑힌 인간이라는 주제를 감상적으로 묘사, 그것을 망향의식과 결부시키지 않고, 보편적 인간 조건으로 확대시킨 전후 최대의 작가이다.’ 이 같은 고평이나 현재 발표된 200 여 편의 학위 논문과 평론, 학술지 논문들은 서사적인 연구로 진행 되어 왔다.

최인훈의 『광장』은 ‘광장’이라는 단어가 69회나 등장하고 있다. 본고는 표제인 단어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이처럼 계속해서 등장한다는 것은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타포가 ‘광장’이라는 단어에 함축적으로 나타낸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에서부터 시작한다. 광장에서 ‘광장’은 출현 빈도수가 많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도 너무나 다양하다. 이야기의 작은 단위인 화소를 중심으로 나눠 살펴보면 28개의 화소 중 17개의 화소에 고르게 분포하고 있다. 따라서 본고는 화소를 나누고 분석을 통해 ‘광장’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논하고 스토리가 진행됨에 따른 ‘광장’의 의미의 변화에 대하여 알고자 한다. 또한 주인공 이명준의 인물 분석을 통해 최인훈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에 대하여 논하고자 함에 있다.

현재 광장은 1960년 『새벽』지의 발표 이후, 판본은 여덟 종류인데 판본에 따라 스토리와 플롯이 다르기도 하고 어휘와 문장상의 차이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렇듯 일곱 번의 개작과정에서 이명준의 사랑과 관련되는 갈매기의 상징은 윤애와 은혜를 상징하던 것에서 은혜와 그녀의 딸로 서술되는 은혜 배속의 아이로 바뀌었다. 본고에서는 현재 1996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발행된 『최인훈 전집1-광장/구운몽』을 텍스트로 사용하고자 하며 앞으로의 인용문은 쪽수만 사용하기로 한다.

 

 

II. 이명준의 유토피아 ‘광장’ 그리고 ‘바다’

1. ‘광장’의 출현 형태와 분포

 

‘광장’이라는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본문의 화소를 나누고 화소에 ‘광장’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을 정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였다. 광장의 본문은 총 28개의 화소로 나눌 수 있고 그 중 17개의 화소에 ‘광장’이라는 단어가 사용됨을 알 수 있다. ‘광장’의 사용 빈도는 앞서 말 한 것처럼 69회의 걸쳐 사용되었다. 다음의 정리는 화소를 정리한 것으로 화소는 *표시로 정리하였고 ‘광장’이 사용된 화소는 번호를 붙였다. 정리는 다음과 같다.

 

* 석방포로 이명준은 타고르호 위에 있다.

* 이명준은 타고르호를 따라오는 갈매기 두 마리를 보고 과거를 떠올린다.

* 이명준은 댄스 파티에서 윤애를 소개 받는다.

* 1) 이명준은 고고학자 정선생을 찾아간다. <23회>, 55, 56, 57쪽.

* 2) 이명준은 아버지가 대남방송에 나온 다음 S에 끌려가 고문은 받은 다음 윤애에게 간 다. <1회>, 59쪽.

* 3) 이명준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추억한다. <7회>, 63쪽

* 4) 이명준은 인천에서 배회한다. <6회>, 78, 79쪽

* 5) 이명준은 윤애와 산책한다. <1회>, 81쪽

* 이명준은 인천에서 고기잡이 배를 타고 월북한다.

* 6) 이명준은 타고르 호가 홍콩에 정박했을 때 상륙시켜달라는 옆방의 김과 싸운다. <4회> 93, 96, 103쪽.

* 7) 이명준은 윤애에게 구애한다. <1회>, 110쪽

* 8) 이명준은 북한을 꿈꾼다. <2회>, 111쪽

* 9) 이명준은 아버지에게 북한의 허상을 따진다 <2회> 115쪽

* 10) 이명준은 문주의 조선인 꼴호즈에서 실태 보고 기사를 작성한다. <2회>, 123,124쪽

* 11) 이명준은 꼴호즈 기사 때문에 신문사 편집실에서 자아비판을 강요 받는다. <2회>, 128쪽.

* 12) 이명준은 자아비판을 끝내고 자취방에 돌아와 은혜와 이야기 한다. <1회> 129쪽

* 13) 이명준은 자취방에서 은혜를 돌려보내고 외로워 한다. <3회>, 137쪽

* 은혜는 모스크바로 떠난다.

* 6.25가 발발하자 이명준은 정치보위부원 자격으로 서울에 내려온다.

* 이명준은 변태식을 고문한 다음 윤애를 능욕하려다 포기한다.

* 이명준은 전투대원으로 6.25에 참가한다.

* 이명준은 낙동강 전선에서 우연히 은혜를 만난다.

* 14) 이명준은 동굴을 발견해서 은혜와의 휴식처로 삼는다. <4회> 162, 163, 164쪽

* 15) 전쟁 포로가 된 이명준은 포로 석방 때에 중립국 행을 결심한다. <3회>, 165, 168쪽

* 16) 이명준은 타고르 호의 뒤쪽 난간에서 바다를 바라본다. <4회>, 179쪽

* 17) 이명준은 두 마리의 갈매기가 은혜와 그녀의 딸이라고 생각한다. <3회> 187, 188쪽

* 타고르 호 선장은 이명준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보고받는다.

* 갈매기는 보이지 않는다.

 

이상의 화소 배열은 플롯의 진행 순서에 따른 것이다. 플롯은 ‘타고르 호->남한->타고르 호->북한->6.25->타고르 호’의 사건으로 진행된다.

 

 

2. ‘광장’의 상징적 의미

 

행동, 정념, 인지. 이 세 단어는 유럽 기호학 이론의 지난 40년간 역사와 변천 과정을 대변하고 있다. 러시아의 형식주의자 프롭에 의한 민담서사의 구조적 형식성과 보편성을 파악하기 위한 인물들의 기능 분석에서부터 그레마스에 의해 재정립된 행동자 모델과 정례적 서사 도식 그리고 기호사각형은 행동 기호학의 이론적 기반을 마련해준 분석도구이다. 또한 행동 기호학의 주체들은 인지차원에서 인식론의 두 가지 기본 틀인 지각력과 감각화에 의해 기호학적 분석의 대상과 영역을 확장하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였다. 정념 기호학의 이론은 주체가 사실의 세계에서 의식의 세계로 의미 작용할 때, 두 세계 사이에서 매개 역할을 하는 정념화 된 몸체의 존재에 관심을 갖게 하였다. 이것은 기호학적 분석 대상이 행동의 영역에서 인지과학, 현상학 그리고 심리학의 깊은 탐구 대상인 몸체적 존재에 대한 기호학적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즉 정념 기호학은 행동 주체와 인지 주체 사이에 존재하는 지각 주체가 생성하는 의미 작용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결국 정념 기호학은 감각 이론을 구축하는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기호학의 분석 도구가 우리 문학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시기는 1980년대이다. 분석 방법론의 효율성과 보편성을 갖춘 기호학 이론을 우리 문학 연구에 적용하려는 시도를 하였던 시기이다. 하지만 기호학의 새로운 이론을 문학 작품에 적용하는 목적이 보다 나은 작품의 이해나 감상의 폭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호학 용어들을 나열하는 지적유희가 돼서는 안 된다. 새로운 이론을 작품에 적용하여 이론의 유용성과 보편성을 검증 · 비판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특히 서양의 사회 · 문화적 맥락과는 전혀 다른 한국 문학에 적용했을 때 이론의 확용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하여, 최인훈의 『광장』의 ‘광장’의 의미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광장’의 사전적 의미는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게 거리에 만들어 놓은, 넓은 빈터’, ‘여러 사람이 뜻을 같이하여 만나거나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뜻한다. 이러한 ‘광장’은 단순한 공간적 개념의 ‘광장’으로만 사용될 수도 있고,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에서 시민들의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던 공공의 광장인 ‘아고라’처럼 민주주의를 대변하고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의사소통 할 수 있었던 의미를 내포한 공간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알아요. 그러나 저는 반드시 연애여야만 하겠다는 게 아니에요. 아무것이든 좋아요. 갈빗대가 버그러지도록 뿌듯한 보람을 품고 살고 싶다는 거예요.”

“정치는 어때?”

“정치? 오늘날 한국의 정치란 미군 부대 식당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받아서, 그 중에서 깡통을 골라 내어 양철을 만들구, 목재를 가려 내서 소위 문화주택 마루를 깔구, 나머지 찌꺼기를 가지고 목축을 하자는 거나 뭐가 달라요? 인간은 그 자신의 밀실에서만은 살 수 없어요. 그는 광장과 이어져 있어요. 정치는 인간의 광장 가운데서두 제일 거친 곳이 아닌가요? ……. 한국 정치의 광장에는 똥오줌에 쓰레기만 더미로 쌓였어요. ……. 한국의 정치가들이 정치의 광장에 나올 땐 자루와 도끼와 삽을 들고, 눈에는 마스크를 가리고 도둑질하러 나오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착한 길 가던 사람이 그걸 말릴라치면 멀리서 망을 보던 갱이 광장에서 빠지는 골목에서 불쑥 튀어나오면서 한칼에 그를 해치우는 거예요. ……. 추악한 밤의 광장, 탐욕과 배신과 살인의 광장, 이게 한국 정치의 광장이 아닙니까? ……. 시장, 그건 경제의 광장입니다. 경제의 광장에는 도둑 물건이 넘치고 있습니다. ……. 문화의 광장 말입니까? 헛소리의 꽃이 만발합니다.

오, 좋은 아버지. 인민의 나쁜 심부름꾼, 개인만 있고 국민은 없습니다. 밀실만 푸짐하고 광장은 죽었습니다. 각기의 밀실은 신분에 맞춰서 그런대로 푸짐합니다. 개미처럼 물어다 가꾸니깐요.

좋은 아버지, 불란서로 유학 보내 준 좋은 아버지. 깨끗한 교사를 목자르는 나쁜 장확관. 그게 같은 인물이라는 역설. 아무도 광장에서 머물지 않아요. 필요한 약탈과 사기만 끝나면 광장은 텅 빕니다. 광장이 죽은 곳. 이게 남한이 아닙니까? 광장은 비어 있습니다.

…….

정 선생이 그때 선생에서 친구로 내러오는 것을 명준은 어렴풋이 깨닫는다. 자랑스러우면서 서운하다. 우상을 부순 다음에 오는 허전함.

그 텅 빈 광장으로 시민을 모으는 나팔수는 될 수 없을까?”

“자신이 없어요, 폭군들이 너무 강하니깐.” (55-57쪽)

 

위의 인용에서 ‘광장’의 개념은 앞서 언급한 사전적 개념의 ‘광장’과는 최인훈에 의해 고도의 계산된 기호화된 ‘광장’으로 사용됨을 알 수 있다. 주인공 이명준은 남한 사회에 ‘광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정치, 경제, 문화의 광장에 대한 통렬한 비판에서 이명준이 말하는 ‘광장’의 모습을 알 수 있는데 그 것은 모두가 소통하는 자유로운 ‘광장’인 것이다. 이러한 ‘광장’이 남한 사회에는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명준은 월북하게 되는 것이다.

북쪽에서 체험한 광장은 어떤 것이었을까? 남한과 크게 다른 광장이 거기 있었던 것일까? 그건 아니었다. 밀항선의 어두운 선실에 숨어서 꿈꾸었던 무지개가 얼마나 허황한 허구였는가를 깨달은 이명준은 광장도 밀실도 허용하지 않는 북쪽 현실에 몸서리를 친다. 이명준은 인민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개인의 밀실을 짓밟는 북쪽의 현실을 고발하고, 참다운 광장이 사라진, 꼭두각시가 춤을 추는 광장을 비판한다. 진정 인민을 위하는 위정자도 없고 정열에 넘치는 혁명도 없는 곳이 바로 북쪽이었다.

 

 

그는 꿈을 꾸었다. 광장에는 맑은 분수가 무지개를 그리고 있었다. 꽃밭에는 싱싱한 꽃이 꿀벌들 잉잉거리는 속에 서 웃고 있었다. 페이브먼트는 깨끗하고 단단했다. 여기저기 동상이 서 있었다. (111쪽)

 

“이게 무슨 인민의 공화국입니까? 이게 무슨 인민의 소비에트입니까? 이게 무슨 인민의 나랍니까? 제가 남조선을 탈출한 건, 이런 사회로 오려던 게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버지가 못 견디게 그리웠던 것도 아닙니다. 무지 한 형사의 고문이 두려워서도 아닙니다. ……. 보람 있게 청춘을 불태우고 싶었습니다. 정말 삶다운 삶을 살고 싶었 습니다. 남녘에 있을 땐, 아무리 둘러보아도, 제가 보람을 느끼면서 살 수 있는 광장은 아무데도 없었어요. 아니, 있긴 해도 그건 너무나 더럽고 처참한 광장이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거기서 탈출하신 건 옳았습니다. 거기까지 는 옳았습니다. 제가 월북해서 본 건 대체 뭡니까? 이 무거운 공기. 어디서 이 공기가 이토록 무겁게 짓눌려나옵니 까? 인민이라구요? 인민이 어디 있습니까? 자기 정권을 세운 기쁨으로 넘치는 웃음을 얼굴에 지닌 그런 인민이 어 디 있습니까?” ……. 그리고 북조선의 공산당원들은, 치사하고 비굴하고 게으른 개들입니다. 양들과 개들을 데리고 위대한 김일성 동무는 인민공화국의 수상이라? 하하하……. (114-118쪽)

 

공문 혁명의 테두리에 눌러앉은 벼슬아치가 돼서, 제 머리로 생각해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눈을 부라리고, 진 리에 대한 해석의 권리를 혼자 차지하려는 사람들만 설치는 고장. ……. 광장에는 플래카드와 구호가 있을 뿐, 피묻 은 셔츠와 울부짖는 외침은 없다. 그건 혁명의 광장이 아니었다. 따분한 매스 게임에 파묻힌 운동장. 이런 조건에서 만들어내야 할 행동의 방식이란 어떤 것인가. 괴로운 일은 아무한테도 이런 말을 할 수 없다는 사정이었다. 혼자 앓아야 했다. (137쪽)

 

 

북쪽 체험은 남쪽 체험이나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모든 것들을 이명준의 발화를 통해 비판하고 있지만 그것 모두는 타자의 의한 폭력이라고 볼 수 있다.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가 아닌 인간의 가장 기본적 권리인 주체적 자유 의지를 박탈하는 사회로부터 당하는 폭력, 그것은 ‘남과 북’ 양쪽 모두에서 당하게 되는 것이다.

폭력적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매개체는 윤애와 은혜이다. 남한에서 만난 윤애는 변덕스럽기 짝이 없다. 어느 때는 쉽게 명준의 요구를 들어주고 어느 때는 끝내 들어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명준은 갈등에 빠진다.

 

 

“윤애, 윤앤 그럼 사랑하지 않는 거야? 다 거짓말이야? 사람이, 다른 한 마리의 사람을 사랑하는데 무슨 체면이 필요해? (중략) 난 윤애가 불탈 때만 행복할 수 있어. 윤애 가슴에 있는 그 벽을 허물어 버려, 그 타부의 벽을. 그 벽을 뛰어넘는 남녀만이 참다운 인간의 뜰을 거닐 수 있어.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야. (중략) 버려, 버리고 알몸으 로 날 믿어줘. 윤애가 날 믿으면 나는 변신할 수가 있어. 무슨 일이든 하겠어. 날 구해줘.”

“제가 뭔데요?”

제가 뭔데요? 분명히 나란히 서 있다고 생각한 광장에서, 어느덧 그는 외톨박이였다. 발 끝에 닿은 그림자는 더욱 초라했다. (115쪽)

 

 

윤애에게 위와 같은 절실한 애원을 하기 전, 이명준은 이미 월북의 결심을 굳히고 있었기 때문에(114쪽)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은 월북의 포기를 뜻한다. 그렇다고 윤애의 거절이 월북의 결정적 동기로 작용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겠지만 북쪽에서 은혜와 나눈 사랑을 생각해 볼 대 월북의 큰 동기로 작용한 것만은 분명하다.

 

 

알몸으로 자기를 믿어 달라고 빌던 말투였다. 윤애는 끝내 그녀의 벽을 허물지 않았다.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 쨌든, 명준이 월북해낸데는, 그녀가 안겨준 노여움과 서운함이 그 대목에서 미쳤던 것만은 가리울 수 없다.(142쪽)

 

 

윤애의 거절이 명준의 노여움을 샀고 그래서 월북했다는 고백이다.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하면 윤애가 명준의 요구를 그때마다 들어주었다면 월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이명준이 꿈꾸는 ‘광장’은 폭력적이지 않음과 동시의 사랑이 넘치는 ‘광장’인 것을 알 수 있다.

 

 

누워서 보면, 일부러 가리기나 한 듯, 동굴 아가리를 덮고 있는 여름 풀이, 푸른 하늘을 바탕삼아 바닷풀처럼 너울 너울 떠 있다. 접은 지름 3미터의 반달꼴 광장. 이명준과 은혜가 서로 가슴과 다리를 더듬고 얽으면서, 살아 있음 을 다짐하는 마지막 광장. (162-164쪽)

 

 

북에서 만난 은혜는 이명준에게 있어 진정한 사랑이다. 낙동강 전투가 벌어지고, 전쟁터에서 다시 재회한 은혜는 이명준에게 구원의 천사나 다름없었다. 은혜는 또 은혜대로 명준의 만류를 무릅쓰고 모스크바 공연을 다녀온 죄책감이 있어 이전보다 더 철저하게 이명준에게 순종한다. 비록 전쟁이었지만 이 둘은 사랑을 나누고 이명준은 이를 통해 ‘광장’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광장’은 사랑이 내포되어야 하는 공간인 것이다.

 

 

3. ‘바다’와 ‘갈매기’의 의미

 

전쟁 중 은혜는 전사하고 포로가 된 이명준은 ‘남과 북’, 그 어디에도 ‘광장’이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중립국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립국에도 이명준이 생각하는 ‘광장’은 과연 존재할 것인가? 최인훈은 정말 우리 사회가 아닌 다른 나라에는 ‘광장’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것일까?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명준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고통 받는 것이 아니다. 사회라는 이름의 거대한 집단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라는 다양한 가면을 뒤집어쓰고 개인에 자유를 박탈하는 폭력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이러한 근본적 문제점은 중립국을 통해 해결되지 못한다.

 

 

……. 펼처진 부채가 있다. 부채의 끝 넓은 테두리 쪽을, 철학과 학생 이명준이 걸어간다. 가을이다. 겨드랑이에 낀 대학신문을 꺼내 들여다본다. 약간 자랑스러운 듯이. 여자를 깔보지는 않아도, 알 수 없는 동물이라고 여기고 있 다.

책을 모으고, 미라를 구경하러 다닌다.

…….

그는 지금, 부채의 사북자리에 있다. 삶의 광장은 좁아지다 못해 끝내 그의 두 발바닥이 차지하는 넓이가 되고 말 았다. 자 이제는? 모르는 나라, 아무도 자기를 알리 없는 먼 나라로 가서, 전혀 새사람이 되기 위해 이 배를 탔다. …….

돌아서서 마스트를 올려다본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바다를 본다. 큰새와 꼬마 새는 바다를 향하여 미끄러지듯 내려오고 있다. 바다, 그녀들이 마음껏 날아 다니는 광장을 명준은 처음 알아본다. 부채꼴 사북까지 뒷걸음질친 그 는 지금 펑그르르 뒤로 돌아선다. 제정신이 든 눈에 비친 푸른 광장이 거기 있다. (187-188쪽)

 

 

중립국을 선택한 이명준은 마지막 장면에서 바다로 향한다. 이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이명준의 자살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해왔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텍스트 어디에도 이명준의 자살로 볼 수 있는 단어들은 찾아볼 수 없다. 이 또한 작가 최인훈의 상징적 기법이다. 바다는 공간적으로 아주 넓고 거대하지만 남과 북에서처럼 폭력적 상황이 없을뿐더러 맑고 투명한 곳이다. 폭력에 대한 비판으로 월북을 했고, 북에서의 생활 또한 폭력적 사회의 억압으로 견디지 못했던 이명준은 중립국 또한 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중립국으로 향하던 타고르 호에서 바라본 바다는 어떠한 폭력도 존재하지 않는 자유로운 공간인 것이다. 또한 물은 문학적 상징으로 재생의 상징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명준이 자살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로 장면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갈매기의 상징은 개작되면서 윤애와 은혜를 상징하던 것이 은혜 모녀로 뒤바뀌게 된다. 이에 대해 최인훈은 어느 대담에서 이명준을 따라가는 갈매기가 처음에는 사랑한 두 여자로 생각되었는데 어느 시점에서 보니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은혜 모녀로 고쳐 썼다고 고백한 일이 있다. 이에 대해 장양수는 개작이 실패한 이유로 위의 고백 내용을 들고 있다. 한 작품이 주는 감동에는 시효가 있어서 작품 발표 이후 세월이 흐름에 따라 상황이 바뀌고 독자가 바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초초한 나머지 『광장』을 개작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과거의 이데올로기 문제에 차가운 반응을 보이더라도 작가는 이를 감수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끝 부분을 사랑의 확인이라는 의미가 드러나게 개작함으로써 오늘날 독자의 취향에 영입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자의 취향에 영합한 결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끝 부분을 사랑의 확인이라는 의미가 드러나게끔 개작했다고 해서 독자의 취향에 맞추었다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작가는 시류에 맞추어 독자와 영합할 만큼 어리석지도 비겁하지도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은혜 모녀로 묘사된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곳을 바다 위가 아닌 ‘광장’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는 바다가 지닌 이미지가 이명준이 생각하는 ‘광장’의 이미지와 같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바다의 넓고 자유로움, 물의 재생성으로 인한 상처의 치유 이미지는 이명준이 생각하는 ‘광장’인 것이다.

 

 

III. 결론

 

본고는 최인훈의 『광장』에서 ‘광장’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고 출발하였다. 하지만 본고는 처음 실수를 하였다. ‘광장’이 갖는 메타포는 단순히 서술되어진 것들만 단면적으로 생각해보면 주인공 이명준이 남과 북으로 대립된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으로서 이념의 대립이 얼마나 처절한 것이고 부질없는 것인가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고 있지만 결국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고 자살하고 마는 것이 한계라고 오독하고 만 것이다.

『광장』의 이명준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서사구조를 파악함에 있어 ‘광장’이라는 상징적 기호와 ‘바다’, ‘갈매기’의 의미 분석을 통해 이명준의 사라짐은 자살이 아니라 자유로운 공간으로 이동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념적 대립이 메타포가 아니다. 이념의 대립으로 인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의 자살이라는 오독을 한 것은 우리가 분단 상황에 처해있다는 점, 이념의 대립으로 전쟁을 하였다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한 것이다. 하지만 그 의미를 다시 분석해보니 이념의 대립은 폭력에 하나일 뿐이다. 이명준이 남한과 북한 사회에서 겪게 되는 고초, 전쟁, 사랑하는 이의 죽음 등은 모두 타자에 의한 폭력인 것이다. 이러한 폭력 속에서 자유로움을 찾아 떠나는 이명준은 ‘자유, 사랑’으로 상징되는 바다로 이동하고 마는 것이다. 바다의 상징성에 대해 작가 최인훈은 생명의 바탕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생명의 바탕은 결국 자궁이요 새 생명을 얻는 곳이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바다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은혜와 하나가 되는 것이며 그것은 곧 사랑의 영원한 결합을 상징한다고 말 할 수 있다.

개작을 통해 갈매기의 상징이 변화됨을 비판함을 논의들이 있다. 하지만 은혜 모녀로 상징되는 갈매기를 통해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폭력, 자유, 사랑’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다뤄 그 의미를 한층 높이는 변화를 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1차 자료

· 최인훈, 『광장/구운몽』, 『최인훈전집1』, 문학과 지성사, 1996년.

 

-2차 자료

· 김미영, 『최인훈 소설연구』, 깊은샘, 2005년.

· 서은선, 『최인훈 소설의 서사 형식 연구』, 국학자료원, 2003년.

· 이상우, 『문학으로 읽는 문화상징사전』, 푸른사상, 2009년.

· 이연숙, 『최인훈 흰 겉옷 검은 속살』, 한국학술정보, 2008년.

· 유태영, 『한국 현대소설의 해석』, 세문사,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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